HEAVEN 20 (完)

Fics/HEAVEN 2009/02/17 04:17



HEAVEN 20 (完)






오르내리는 사람들이 지하철 계단 위를 교차한다. 그 속에서 나는 잠깐 최승현을 잃어버렸다. 방금 전 다른 사람에게 떠밀려 나와 툭 부딪히고 괜찮아? 묻더니 눈을 한 번 깜박이는 시간동안 사라지고 말았다.  
절반도 올라가지 못했는데 숨이 찬다. 계단 손잡이를 붙들고 천천히 호흡했다. 출구를 올려다보니 내 위로 무너져 내리는 것은 모두가 똑같은 냉정한 뒷모습들, 목적지에 몰두하는 무심한 얼굴들.
그 틈새를 비집으려 결심하는데 반짝, 최승현이 나타났다.

“안 오고 여기서 뭐 하냐?”

정말 반짝, 하고 솟아올랐다. 무의미한 인파 한가운데서.

“너 갑자기 없어졌길래.”
“어지러워?”
“아니.”
“비실비실.”
“얼른 가야지. 늦었는데.”
“말은 잘 해.”

최승현이 낚아챈 내 손을 자기 옷 주머니에 쑤셔넣는다. 아까보다 두 배는 빠른 걸음걸이로 후다닥 끌려갔다. 출구는 사거리와 닿아 있었다. 멈춘 최승현과 나를 두고 자동차가 붐볐다. 지금껏 내가 알던 것보다 더욱 힘찬 거리의 약동이  의아했다. 변화를 감지할 수 없는 견고한 오후. 달라진 건 분리된 우리들 뿐인가. 
 
두리번거리던 최승현이 홱 방향을 튼다. 저기가 입구인가보다, 터미널의 넓은 출입구를 발견해냈다. 공기로만 채운 풍선보다 존재감이 약한 나는 최승현에게 또 끌려가다시피 했다. 애써 보폭을 맞추어 나란히 섰다. 여전히 최승현이 내 손을 꼭 잡고 있다.

“이제 어디로 가야 돼?”
“글쎄, 일단 이거나 먹어.”

나를 대합실 의자에 앉혀놓은 최승현은 편의점으로 갔다. 커다란 가방을 메고 있었다. 짐을 넣은 가방이 무거웠다.
원래대로라면 지금쯤 학교에 있어야 한다. 점심을 먹고 5교시 수업이 시작할 시간. 잔뜩 지루해진 최승현이 나를 쿡쿡 찌르며 장난을 칠 시간. 삐뚤빼뚤한 책상들 사이 좁은 복도를 두고 문자를 주고받던 그런 시간이 벌써 그리워졌다. 그러나 무사히 되돌릴 수 있을지 확신은 없다.

“먹기 싫은데.”
“너 계속 아무것도 안 먹었잖아.”
“배 안 고파.”
“먹으라면 먹어.”

최승현이 내 입안에 차가운 김밥을 밀어넣었다. 그냥 물고 있다가 감시하는 최승현 때문에 억지로 씹었다. 아무 맛도 안 나는 딱딱한 밥알들이 입 안을 굴러다닌다. 최승현은 내게 부쩍 단호해졌다. 싫다고 도리질해도 김밥 한 줄을 끝까지 다 먹였다.

“맛없어...”
“밥투정하냐.”
“뭐야, 넌 그러고 과자 먹잖아.”
“얼굴 퀭해졌다.”
“...”
“못생긴 게 더 못생겨졌어.”

해피한테는 저리 가란 말을 제일 많이 했다. 최승현에게는 하지 말라는 말을 제일 많이 한 것 같다. 하지 마, 나름 인상을 써도 큰 손으로 내 머리를 부비며 놀려댄다. 우리 지용이 이렇게 못나서 어디다 보여주냐?

네 얼굴도 말이 아닌데. 서늘한 눈이 더 깊이 가라앉았다. 빛이 바랜 얼굴 위로 불현듯 시들고 외로운 기색이 스쳤다. 이 얼굴을 마주하는 건 오랜만이네. 네게서 도망치려 발버둥쳤던 더운 날들 이후로는 없었는데. 정말 모르는 거야? 너도 별로야. 너도 아픈 사람같아. 보고 싶지 않아...

“그렇게 맛 없었어?”
“...”
“또 이런다, 또.”

짓궂었던 최승현의 손길이 차분해졌다.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쓸어넘기고 가만가만 어른다. 분명 내가 또 울상이 되어 버렸나 보다. 흉해서 미안. 나직이 말하자 최승현은 그냥 미소지었다. 미소는 완벽했지만 역시 조금 우울한 것이었다.
이제 진짜 가자. 자리에서 일어난 최승현이 나까지 추스려 일으켰다. 식당과 상점이 촘촘히 문을 연 대합실은 발소리와 말소리가 윙윙 울려 부산했다. 유독 갈 데가 없는 우리는 드디어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어디로 가지.














-
화장장에서 돌아오고 쓰러져 앓았다.
핏줄을 타고 퍼진 열이 온 몸을 장악했다. 감각이 사라진 대신 머리부터 발끝까지 저리고 짓이기는 통증이 찾아왔다. 해피가 치렀던 열병도 이런 것이었을까. 두 번은 겪을 수 없을 만큼 맹렬하게 아팠다. 그러나 눈꺼풀을 달구는 열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슬픔은 더욱 위력적이었다.
슬픔일 거라고 생각했다. 정확하지는 않았다. 감정에 그토록 뚜렷한 형체가 있다는걸 믿을 수 없었다. 어쨌든 그것은 누워 있는 내 몸 위를 기차처럼 달려 지나갔다. 너무 아파서 눈물이 흘렀다. 고온으로 끓은 눈물은 눈을 데이게 했지만 뺨을 흐르며 쉽게 식었다.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나는 드러내지 않았다. 학교에 가고 일을 했다. 드러내는 법을 몰랐다. 혼자 있는 밤에 숨죽여 아우성을 치다가 해가 뜨면 그 하루를 살러 문을 열고 나갔다. 어리광을 부릴 상대가 없었다.
오랜 시간이 지나고 불필요한 감정은 모두 잃은 줄 알았다. 그만큼 강해진 줄 알았는데 나는 틀렸다. 아이의 죽음과 함께 다 풍화된 줄 알았던 헤어짐과 버려짐이 한꺼번에 밀어닥쳤다. 나는 약했다. 정말 지긋지긋하게 나약하고 허풍스러웠다. 쓸모없는 벌레처럼.  

ㅡ물 먹어.

최승현이 물잔을 입에 대 주었다. 조심스럽게 잔을 기울였다. 억지로 무언가를 먹이려 했지만 나는 다 토했다. 포기한 최승현은 대신 시간마다 물을 먹였다. 간신히 넘긴 물 한 모금이 식도에서 증발해버린다. 목이 말랐다. 쥐어짜낸 눈물의 양에 비해 턱없이 모자랐다.

ㅡ무슨 요일이야?
ㅡ일요일.
ㅡ해피는 언제 죽었지?
ㅡ어제. 더 자.

열은 몸을 불사른다. 보고 있니? 내가 널 태운 것이 아니라 네가 나를 태우는 거야. 
 
최승현이 창가에서 담배를 피운다. 침대 머리맡에 씁쓸하게 서 있다. 이마에 닿는 냉기. 얼음과 부딪힌 공기가 물방울로 맺혀 떨어진다. 이것은 환상이 아니다.

마루에는 장난감이 널려 있다. 아이는 자동차를 가지고 논다. 친구가 없는 아이의 놀이는 단순하다. 자동차의 네 바퀴가 마루의 한쪽 끝으로 굴러가고 아이는 그 뒤를 쫒는다. 인내심만이 요구되는 놀이를 아이는 지겹도록 반복한다. 이제 너무 많이 놀았어. 너무 오래 놀았어. 아이는 대답하지 않는다. 혀를 길게 빼물고 썩어 튀어나온 눈으로 나를 응시할 뿐. 이것은 환상이 아니다.
환상은 최승현이었겠지. 눅눅했던 판자집 방에서도 우린 즐거웠다. 턱없는 일이니까, 그건 분명 병들은 환상이겠지.

ㅡ추워.
ㅡ땀을 너무 많이 흘렸어.

최승현은 내 몸을 닦아 주고 있었다. 간신히 앉혀서 윗옷을 벗기고 어깨와 가슴을 묵묵히 훔친다.
마음이 간사했다. 아플 때 누군가 간호해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는데 하나도 기쁘지 않았다.

ㅡ승현아.
ㅡ응.
ㅡ나 살기 싫어.
ㅡ...
ㅡ너무 힘들어.
ㅡ무슨 말을 그렇게 하냐?

헐떡이며 말했다. 해서는 안 될 말이란 걸 알면서도 꼭 말하고 싶었다.  
내 팔을 들어올리던 최승현의 손이 멈추었다. 목소리 끝이 떨렸다. 아주 약간이었지만 나는 눈치챘다.
참는 법을 어디서 익혔을까. 폭발할 것 같았던 위기는 눈깜짝할 사이에 지나갔다. 최승현은 내 몸을 마저 닦아주고 옷을 입혔다.

ㅡ승현아.
ㅡ...
ㅡ미안해.

어떻게 이 방은 내내 어두운 거지? 낮과 밤이 사라졌다. 나는 내내 누워 있다. 최승현이 나를 결박했었던 침대 안이다. 몽땅 벗고서 장난을 쳤었다. 시작은 늘 그렇게 가벼웠다. 이윽고 우리는 웃지 않았다. 귓가에 들리는 최승현의 숨소리가 거칠었다. 흥분도 쾌감도 날이 서 있었다.
머리 속이 새하얗게 까무라치는 그 순간만은 내가 어른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최승현이 내 안에서 빠져나가고 끈적하게 젖은 몸이 말라 버리면 우리는 덜 자란 상태 그대로였다. 최승현은 금방 내 품을 파고들었다. 베개든 이불이든 피가 도는 몸이든 애착할 것이 필요했다. 어른은 아마 그렇지 않을텐데.

ㅡ무슨 요일이야?
ㅡ화요일.
ㅡ나 이제 다 나았어.

눈을 떴다. 최승현은 침대가에 엎드려 자고 있었다. 지쳐버린 최승현의 이마를 짚었다.
그 손을 내 볼에 가만히 가져가 보았다. 열은 다 내렸다.












-

"어디가 좋을까?”

최승현이 묻는다.

“바다로 가야지.”
“어느 바다?”
“뭐..동해?”
“그럼 거기로 가자.”

출발시간이 15분 남은 표를 샀다. 어느 버스를 타야 하는지 빙빙 헤매다가 표와 맞는 걸 겨우 찾아냈다. 최승현은 짐칸 속에 가방을 대충 쑤셔넣고 털썩 주저앉았다. 나는 창에 기대어 있었다. 이미 시동이 걸린 버스는 퉁명스런 소음과 함께 진동했다.

“바다 되게 오랜만에 가 본다.”
“난 고속버스 처음 타 본다.”
“초등학교 때 가고 처음인데.”

마지막으로 바다에 갔던 것은 정확히 언제였지. 겁이 많은 건 본성이라 헤엄은 치지 못했다. 잠시 물 속을 떠다니다 모래 위에 하염없이 앉아 있었다. 희미한 기억을 불러내자 몸 사이를 비껴가는 물의 감촉보다 바닷바람이 먼저 닿았다. 혀끝에 감도는 짠 맛. 깊은 데서 올라오는 물비린내.

사진 볼래? 최승현이 제 휴대폰에 저장된 사진들을 보여 주었다. 아이 사진이 많았다. 흔한 구도가 없고 별 것 아닌 장면들만 집요하게 찍어 놓은 것이 최승현다웠다.  

“이거 왜 이렇게 울상이야?”
“어, 장난감 밟고 넘어져서 머리 박은 거.”
“엄청 아파하는 거 같은데...”
“울락말락 하다가 안 울더라.”
“뭐냐, 너. 보고만 있었어?”
“안 울었다니까.”

여튼 귀엽잖아.
휴대폰 액정 화면에 매달려서 한참 들여다보았다. 사진들이 계속 이어졌다. 입 속에 주먹을 처넣고 눈을 굴리는 사진. 아직도 이 버릇이 있었나? 몰랐냐? 몰랐어. 네가 별로 안 좋아해서 너 볼 땐 안 그러더라.
최승현이 포착한 아이는 정말로 그냥 보통이었다. 동물원에 갔던 날 둘이 장난을 치는 모습도 그랬다. 평범하게 태어난 또래와 다를 바가 없었다. 우울은 내가 전염시켰던 것일까. 내겐 그런 적이 없었어.

“약 먹어.”

내게 휴대폰을 쥐어 주고 한참 주머니를 부스럭거리더니 약봉투를 꺼낸다.

“안 먹어도 돼. 다 나았어.”
“그래도 일단 먹어. 아까 보니까 여태 맥을 못 추던데.”
“...수면제잖아.”

입 속에 넣어 주던 알약들은 해열제와 수면제, 그리고 정체 불명의 것들이 조금 섞여 있었다. 이것들을 한꺼번에 먹으면 별로 좋지는 않을 텐데. 그래도 그냥 먹었다. 나쁜 부작용이 생겨도 상관없었다.
최종적으로 나는 회복했다.

“...길 막히면 네다섯시간 걸릴 텐데 괜찮겠냐?”
“그런다고 잠 오는 거 아니야. 걱정 마.”

아마도.

“여행이네, 이거..”
“그러게.”

버스가 움직였다. 터미널을 빠져나가 동쪽으로 달린다. 서울 경계를 벗어나 고속도로가 펼쳐지자 이동이 실감났다. 딛어본 적 없는 어딘가로 옮겨지고 있다는 것.

아까 내 말에 찬성하며 피식 웃은 최승현은 그 새 잠이 들었다. 한 번쯤은 떠나고 싶었어. 먼 미래가 될 줄 알았는데 출발은 예상보다 훨씬 일찍 이루어졌다. 최승현이 무언가 웅얼거리며 뒤척였다. 긴 시간 일하고 피로해진 모습이었다.













-
서울과 달리 이 곳의 터미널은 낡았다. 절반은 전에 있던 것에 덧대어 지은 가건물이었고 듬성듬성 놓인 긴의자가 대합실의 전부였다. 먼지 낀 유리창으로 햇빛이 비스듬했다. 
 
두어 군데 먼저 정차한 버스는 이 곳이 종점이었다. 남아 있던 승객들이 하나 둘 터미널을 빠져나갔다. 나는 눈을 부비는 최승현의 손을 잡고 사람들 뒤를 쫒았다. 목적지가 없는 여행은 고비마다 정체된다. 바로 앞 정류장의 시내버스가 사람들을 싣고 갔지만 우리는 탈 수 없었다.

“택시 타고 바다로 가 달라고 하지 뭐.”

바다요? 여기는 해수욕장이 없는데. 그냥 동네 바닷가는 있는데 노는 데가 아니예요. 괜찮다구요? 뭐 그럼 가시던가. 거기 백사장도 없고 돌투성이에 재미 없는데.
한적한 길가에 내리고도 여러 번 물어 찾아갔다. 택시기사 아저씨의 말대로였다. 뻗어나온 산줄기로 양 옆이 가로막힌 바다는 꼭 한 뼘이었다. 모래밭에는 바위들이 돋아 있었다. 돌부리에 발끝을 채이며 걸었다. 인기척은 없었다. 큰 해수욕장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바다에는 흔적이 없지만 이미 완연한 가을.

“여기쯤 뿌릴까?”
“그래.”

별로 위치를 고려할 만한 여지가 없다.
최승현이 가방에서 나무상자를 꺼냈다. 조금 망설이다 그 안의 한 줌을 바람에 태워 보낸다. 뼈를 빻은 가루가 수평선을 향해 흩날렸다.
나는 웅크리고 앉아 파도에 손을 담갔다. 지구의 반대편에서 밀려 온 파도는 내 손을 휩쓸고 제가 왔던 곳으로 물러갔다. 이 물결이 해피를 데려갈 것이다. 가져보지 못했던 엄마와 아빠와 마당의 큰 개, 주말의 행복한 외출까지.

“좋은 데로 가라, 해피야.”
“...”
“니네 형은 내가 잘 키울 테니까.”
“뭐래..”

정말이야. 차라리 잘 됐어. 천국에 갈 테니까, 살아 있는 것보다 훨씬 나을 거야. 땅 위에 좋은 일은 없어. 기쁨은 모두 사라진 지 오래야. 잘 됐어. 슬퍼할 이유가 없어.  

“거기선 말도 하고 일일드라마도 맘대로 봐.”
“...”

..........불쌍해.

“...다시 태어나지 말고.”

내 동생.  
너도 해 봐. 최승현이 시키는 대로 상자에 남은 재를 그러모았다. 움켜쥔 주먹을 펴자 흰 가루는 바람이 부는 대로 주춤주춤 자취를 감추었다. 이것이 마지막.
빈 손바닥을 들여다보는데 최승현이 나를 확 밀친다. 헛디딘 발이 마침 들이닥친 파도를 밟았다. 뭐야? 여기까지 왔는데 물놀이해야지. 팔짱을 낀 최승현은 어이없이 기세가 좋았다. 시시한 장난을 쳤다. 그만 해, 붙들린 내가 웃다가 숨이 가빠질 때까지.  

해가 지고 있었다. 바다와 하늘이 밀착하고 시야에 거리끼는 것은 하나도 없다. 붉은 노을은 거침없이 물들었다. 빌딩숲 사이로 지켜보던 짧고 흐린 붉은 빛과 달리 바다만큼이나 깊고 짙었다.
끝없이 붉어도 하늘은 애초에 무채색이다. 노을은 그저 빛의 굴절일 뿐이라지. 거대한 우주가 대기를 뚫고 투영되는 것. 세상의 쉼없는 운행에 비해 나는 작고 사소할 뿐인데.

석양이 흐드러진다. 또 하나의 오늘이 막을 내린다.  

“해피가 보면 좋아했겠다.”
“이번엔 잘 골랐어?”
“응. 백점.”

화장한 재를 뿌리는 것보다 더욱 중요했다. 최승현은 생일 선물을 잊지 않고 가져왔다. 그대로인 포장을 벗기자 무척 가지고 싶어했던 로보트가 드러났다. 선물을 받으면 분명 내게 다가와 같이 놀자고 청했을 것이다. 나와 달리 선하고 너그러운 아이였으니.  

모래밭에 로보트를 남겨 두고 바닷가를 떠났다. 꼭 한 번 뒤를 돌아보았다. 지구가 완전히 반 바퀴를 돌아 푸른색 어둠이 몰려오려는 찰나, 로보트는 용감하게 팔을 뻗고 빈 바다를 지키고 있었다.
















-
일찍 침대에 누웠다. 제일 가까운 모텔 방이었다.
불투명한 유리창 너머 주인 아주머니가 던지듯이 키를 건넸다. 확인한 방은 건물의 맨 꼭대기 6층이었다.  

“파도 소리 들린다.”
“여기까지 들리네.”

어두웠다.
난 이제 영원히 밝은 데 설 수 없을지도 몰라. 어둠에 너무 친숙해졌어. 최승현의 가방을 뒤져 남은 두통약을 꺼내 먹고 넓은 침대 위를 데굴데굴 굴렀다. 창문은 활짝 열려 있었다. 최승현이 피우는 담배 연기와 함께 기억 속의 그 바닷바람이 불어 온다. 축축한 만큼 더 차가웠다.  

모텔로 오기 전 조그만 식당에서 밥을 먹었다. 집에서 먹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은 상을 두고 최승현의 눈총을 받아 가며 숟가락질을 했다. 건너편의 텔레비전은 아홉시 뉴스를 내보냈다. 깔깔한 밥을 억지로 넘기느라 관심없는 화면에 시선을 주었다. 연쇄살인사건으로 화려하게 문을 여는 뉴스의 앵커는 처음 보는 얼굴로 바뀌어 있었다.

“창문 닫을까?”
“아니, 열어 놔.”
“추우면 닫아.”
“안 추워.”

계절은 변한 지 오래이다. 냉기가 싸늘했지만 창문을 열어 두었으면 했다. 춥냐고 확인을 하는 최승현에게 고개를 저었다. 대신 이불을 뒤집어 쓰고 웅크렸다. 이불 속에서 숨을 참고 하나, 둘, 미처 셋을 세기 전에 최승현이 숨어들어왔다.
익숙한 체취가 소용돌이쳤다. 늘 아주 달콤한 것, 혹은 베이비파우더 냄새가 나는 향수를 뿌린다. 조금도 어울리지 않는 선택이어서 최승현이 가까이 올 때마다 나는 피식 웃음이 났다. 그리고 담배에 섞인 박하향, 따뜻한 피부가 발산하는 풍요로운 향기.

“숨 막혀...”
“잘 시간이다. 자자.”
“몇 신데 벌써 자?”
“밤이야. 깜깜하잖아. 자야 돼.”
“언제부터 그런 모범적인 생활을 했어?”

꽉 안은 최승현의 품을 벗어나려 했다. 나를 재우려는 최승현은 벌써 제 눈을 꾹 감았다. 그래봤자 타고난 기질이 감은 눈에 전부 남아 있다. 시간이 자꾸 흘러 정신없이 자라 버린 꼬맹이. 나한테 얼마나 난폭하게 굴었는지 기억이나 할까 몰라. 좋아하는 마음 때문에 자기도 상처를 입을 만큼 여렸다. 나는 다 기억해. 기억은 명료하지 않았다. 사건의 개요는 거의 다 잊어버렸다. 그러나 순간 사로잡힌 충동같은 감정이 아직도 살갗을 아리게 했다.
실감하기까지 오래 걸렸다.
너는 참 비밀스런 눈짓같아서.  

“어, 뭐야.”
“뭘 놀래. 자기는 맨날 이러면서.”

많이 떨렸지...    

“그냥 잠이나 주무시지?”
“심심해. 기껏 여기까지 왔는데.”
“웬일이냐. 네가 먼저 엉기고.”

나는 최승현의 몸 위로 기어올랐다. 허리에 걸터앉아 내려다보니 최승현은 당황하다가 이내 좀 신이 난 표정으로 수긍했다. 잠은 무슨 잠이야. 네가 그럼 그렇지, 뻔하기는.

“야, 너 가만 있어.”
“뭐 해 줄건데? 설마...”
“됐고, 너 내가 먼저 옷 벗길거야. 꼼짝도 하지마.”

생각보다 쉬웠다. 착한 꼬마처럼 명령을 고분고분 따른다. 건드릴 틈을 주지 않고 내 것까지 다 벗어던졌다. 그래도 최승현은 내 아래에 붙들려 있다. 오늘 호강하겠군, 내일은 큰 일 나는거 아니야, 따위 변태 아저씨같은 말을 하면서.
몸을 숙였다. 내 볼이 닿은 최승현의 가슴 속에서 심장이 뛰고 있었다. 규칙적인 두근거림으로 닿은 자리가 달아올랐다.
내 것과 다르지 않은 평범한 운동을 놀라움으로 느꼈던 순간이 또 있다. 그 때 최승현은 등 뒤로 나를 안고 있었다. 둔한 내가 그럴 리 없는데도 또렷한 박동이 몸을 관통했다. 크고 빠른 수축과 이완, 쿵쿵 울려대는 심장 소리. 나와 꼭 닮은.

“왜 가만히 있냐, 급한데.”

최승현이 내 등을 토닥였다. 농담과 달리 부드러웠다.

“딴 생각 하느라.”
“또 뭐.”
“너랑 처음 잔 날.”

위치가 역전된다. 시야가 빙글 뒤바뀌었다. 최승현은 쉽게 나를 짓누른다. 나는 저항하지 않는다. 얌전히 누워 버린다. 뭘 해 줄 만한 능력도 없는 데다가 이렇게 보는 최승현의 얼굴을 아주 많이 좋아하기 때문에. 이 때만큼은 구차한 현실 감각을 잃어버리고 만다. 너보다 더 멋진 것은 없을 것 같아.

“입술 아직 다 안 나았네..”

최승현의 입술은 겨우 아물어가는 중이었다. 한참 시간이 지나 아이가 유골함에 담겨 나오고, 최승현은 계속 입술을 악물고 있었다. 아이가 흘렸던 것과 똑같은 피 한 방울이 떨어졌다. 새빨간 자국이 티셔츠에 번지는 것을 보면서 위로는 하지 못했다. 나는 이기적이지. 누구도 나보다 더 아플 수 없다고 생각했으니.

손 끝을 입술에 대어 보았다. 상처가 있어서 더 좋았다. 강렬한 감정은 말로 구분이 되지 않는다. 지금 나를 매혹하는 것이 슬픔인지 기쁨인지 사치스런 쾌락인지 잘 이해할 수 없었다.

“사는 거 너무 짜증나고 지겹고 힘들고..”

한 번도 이해되었던 적이 없다.

“...”
“진짜 살기 싫었는데.”
“그런 말 하지 말라니까.”
“이거 아까워서 어떻게 남 주냐?”

처음으로 집착이 생겼다. 네가 내 것이 되었다고 생각했을 때.
유치한 소유욕일지도 몰라. 하지만 그것이 아니면 사는 데 어떠한 구실도 붙일 수 없을 것 같다. 설명이 되지 않아. 아이의 죽음에도 불구하고 널 보며 다행이라 여길 수 있다는 것이.
멍청해졌나봐. 감사한 마음이 들어. 네가 있어서 나는 조금 더 가치롭고 내일을 낙관할 이유가 있어.

난 또 좀 멍해졌을 것이다. 최승현이 한 눈을 판다고 늘 타박하는 그런 표정으로. 사실은 엄청나게 집중하고 있다는 걸 알 리가 없다.

“열 때문에 헛소리할 때도 그러더니.”
“뭐랬는데?”
“자꾸 무서운 말 할래?

한숨을 쉰 최승현이 아무것도 안 하고 그냥 내 목덜미에 얼굴을 묻는다. 조그만 게 살기 싫다느니 이상한 소리만 지껄이고 말이야..하여간에 자기 생각만 하고 재수없는 새끼야..웅얼거리면서 내 욕을 하는데 별로 틀린 말도 아니고 어린아이가 투정을 부리는 것 같아서 슬프거나 우울하지 않았다.

“최승현.”
“...왜, 임마.”
“너 우냐?”
“...”

아까 눈이 그렁해진 것은 내 착각이 아니었나보다.
최승현의 어깨가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여전히 얼굴을 숨기고 있었지만 더운 눈물이 목덜미를 적셨다.

“왜 울어.”
“..그냥..기분이 이상해.”
“갑자기 왜 그래.”
“몰라. 그냥...엄청 슬픈 기분.”
“....”
“있잖아.”
“응.”
“해피 나 때문에 죽었나봐.”
“...왜 그런 생각 해.”
“동욱이형 말대로 했으면 안 죽었을 텐데.”
“...”
“내가 욕심 부려서 나 때문에 죽었나봐.”

억지로 들추어 낸 얼굴이 온통 젖어 있었다. 잠깐 신기하다는 생각을 했다. 우는 모습은 본 적이 없었다. 눈물을 참고 더욱 고집스러워지는 것이 최승현의 방식이었다. 그러나 한참을 혼자 견디다 터진 눈물은 잘 멈추지 않았다. 승현아, 내 손으로 닦아내도 눈물은 속눈썹을 적시고 떨리는 입술로 흘렀다.

나는 최승현을 안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동안 최승현이 내게 해 주었듯이.  

“사실 안 믿긴다. 아직도 실감 안 나. 해피가 죽었어...”
“울지 마. 그만.”
“나 때문에...”
“너야말로 쓸데없는 생각 한다.”
“...”
“해피도 좋아했었잖아.”
“...”
“잘 했어...”

해피의 얼굴이 떠올랐다. 나를 괴롭히던 죽은 아이는 어느새 다시 살아나 높은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쉬지 않고 부지런히, 드디어 꼭대기를 밟고서 환하게 나를 내려다보는 모습. 힘내서 올라오라는 손짓. 

“울기 싫은데...”
“응.”
“왜 안 멈추지?...”
“그거 원래 맘대로 되는 거 아니야.”

최승현은 자꾸 울었다. 조용히 달랬다. 당황한 기색으로 눈물을 떨구던 최승현은 곧 길들여졌다. 내게 바싹 기대었다. 창 밖으로 파도 소리가 들렸다. 잘게 부서진 파도는 끊임없이 되돌아와 모래톱을 뒤흔들었다.
우리는 아직 낯선 곳에 있다. 

“아 씹, 쪽팔려...”
“그냥 울어.”
    
이렇게 보니까 좀 귀엽다? 이번엔 내가 장난을 쳤다.
최승현은 미간을 팍 찌푸렸는데, 그 바람에 고여 있던 눈물이 또 한 방울 넘쳤다.
















-
새벽에 모텔을 빠져나왔다.
불조차 꺼진 터미널을 찬 바람이 휩쓸었다. 출입구가 열려 있었지만 인기척은 없었다. 우리는 배차 시간표를 확인했다. 출발과 도착 시간을 손으로 적은 시간표는 간단했다. 이 곳에서 갈 수 있는 곳은 얼마 되지 않는다. 서울로 가는 버스를 제외하면 더 먼 바다로 가는 몇 대 뿐. 서울행 첫차는 사십분 정도 더 기다려야 했다.

“괜히 일찍 왔나보다.”

춥다. 주머니에 손을 넣고 긴 의자에 앉아 등을 말았다. 새벽은 어디나 푸른색이구나. 먼지로 푸석한 서울과 달리 이 곳의 공기는 습기를 품고 있다. 따뜻한 걸 만나면 서로 엉길 물방울과 아주 약간의 소금 결정이 비쳤다.

“졸려. 잠 못 자서.”
“좀 자고 나올 걸 그랬나?”
“더 있어서 뭐 해.”

최승현이 내 무릎을 베고 드러누운다. 이제 짐이 없는 가방이 마구 구겨진다.
문득 로보트가 궁금해졌다. 방금 우리를 이 곳까지 태워 준 택시 기사 아저씨는 어젯밤 파도가 특별했다고 말했다. 로보트는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고 있을까. 버려진 바다를 빈틈없이 지키는 것.  

“우리 서울 가지 말까?”

최승현이 갑자기 제안했다.

“그럼 여기 더 있어?”
“우리 다른 데 가자.”
“어디?”
“멀리 가서 너랑 나랑 둘이 살자.”

아는 사람 하나도 없는 데 가자. 우리 둘이 살자.
이런 말을 하면서 눈을 반짝반짝 빛낸다. 나는 반쯤 웃음이 터졌다.

“너 일 해본 적 있어?”
“아니.”
“돈 벌어 본 적 있어?”
“아니.”
“그러면서 어딜 가서 살아. 어이없다.”
“이게, 오빠가 하자면 그냥 네 할 것이지 말이 많아.”

진심이라는 것을 안다. 내게만 허락해준 착한 모습.  
살며시 속삭였다.

“승현아.”
“왜.”
“진짜...갈까?”  

최승현이 빙그레 미소지었다.  
우리는 결국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갈 것이다. 다른 선택이 없었다. 모빌을 뜯어 버린 판자집 방문을 열고 학교를 갔다가, 닫힌 카페 문 앞을 허전하게 맴돌다가, 편의점에서 일을 하다가, 늦은 시각 네가 나를 데리러 오고, 갈림길에 도착하면 헤어지기 싫어서 한참을 더 서 있겠지. 그걸로 충분했다.
나는 최승현의 눈을 덮었다. 그토록 많은 눈물을 숨기고 있던 두 눈은 내 손 아래 얌전히 감겼다. 속눈썹이 손바닥을 간질였다.

ㅡ 너 때문에 그런 거 아니야.

네 선택이 옳았어. 잘 했어. 우린 실수하지 않았어...
최승현을 위로하며 말했다. 지난 밤 그 말들이 내게도 용기를 가져왔다. 더 이상 현실에서 도망치지 않겠다는 희미한 자신감 같은 것. 어떤 위기가 닥쳐와도 늘 지는 건 아니야. 가끔은 좀 더 강할 수도 있는 거야, 우리가...

배고파.

가서 맛있는 줄게.

요리 못하잖아.

아니야. 알아. 해피도 좋아하던 거야.

뭔데?

..김치찌개.

, 그건 맛있겠다..

 

새벽이 엷어졌다. 사람들이 하나 물안개를 헤치고 다가왔다. 커다란 짐보따리를 할머니, 잠이 칭얼대는 아이를 안은 엄마, 한껏 차려입은 중년의 부부, 정지한 우리를 스쳐 지나가 모두가 출발을 기다린다. 다르지만 같은 사람들 속에서 나의 모습을 발견했다. 고통이 흔한 삶을 끝까지 버텨내는 , 삶의 대가로 주어지는 수많은 기회들.

최승현이 불쑥 손가락을 내민다.

 

약속이다.

 

살아 있다는 것은 행운이었다.

 

그래, 약속할게.

 

아주 사소한 몸짓조차 감격스러웠다.

바보처럼 좋아하던 최승현은 잠이 들었다. 가장 평화로운 잠이었다. 터미널은 점점 북적이기 시작했고 내게 몸을 맡긴 최승현만이 고요했다. 눈을 감은 고요 속에서 오랫동안 기다렸던 목소리를 들었다. 나를 다독이는 목소리는 나와 닮아 낯설지 않았다. 걱정하지 , 대답을 듣고도 한동안 머무르는 사려깊은 음성. 

사방이 밝아 온다. 어둠이 걷힌 세상은 지금껏 내가 놓친 신호들로 가득 있었다. 신호들은 햇빛처럼 내게 쏟아졌다. 언젠가 달리는 버스 밖으로 지켜 세상은 허공같았다. 그러나 이제는 있었다. 저물어가던 작은 창가를 스쳐간 것은 내가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삶의 조각들이었다.

살아 있다는 것은 행운이었다. 내가 가는 곳이라면 나를 위한 것이 예비되어 있으리라. 그리고 곁에는 네가 있을 것이다. 나이를 먹어도, 어른이 되어도, 우리를 둘러 모든 것이 변한대도 지금 얻은 용기가 나를 인도할 것이었다.


언젠가 순간을 사랑으로 기억하리란 깨달았다.


그리고 때까지, 우리는 헤어지지 않을 것이었다.

 

 

 










TALK



Posted by nico

HEAVEN 19

Fics/HEAVEN 2009/02/07 04:33




HEAVEN 19







ㅡ온다더니 왜 안 와?
ㅡ해피 죽었어

나는 더듬더듬 아이를 들어올렸다. 가슴이 세차게 뛰었다. 사실이 아닐 거야, 아이가 숨을 참고 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캄캄한 방 아래 조심스레 눕힐 때까지 사라진 호흡은 돌아오지 않았다. 어떤 의지도 없이 끌리는 조그만 몸에서 죽은 것의 냄새가 났다.

나는 기다렸다. 무작정 기다리고 있었다. 안돼, 이럴 수는 없어. 넘어져도 불평이 없던 아이. 속으로는 당황한 나를 되려 재촉했었는데. 그 한 발자국이 마지막이었나. 아이는 어렸다. 무서워서 도망을 간다. 낮은 마루를 달려가는 걸음걸이가 겁에 질려 엉켜버린다. 떨어지는 순간이 눈 앞을 날카롭게 흘러갔다.
아니야, 아직 죽지 않았을거야. 아이에게 뻗은 손을 거두었다. 얼른 일어나라고 재촉하려 했다. 그러나 할 수 없었다. 대답을 하지 않을까봐 두려웠다. 얼은 손 끝이 미친듯이 떨렸다.

어지러웠다. 사방을 막은 벽이 수축과 팽창을 반복한다. 내 것밖에 없는 숨을 따라 한없이 부풀었다 짓눌러 터뜨릴 듯이 움츠러든다. 작은 그림자가 어른거렸다. 방 안을 타박타박 걸으며, 어느 구석엔가 붙어 있는 오래된 신문지 앞에서 고개를 갸웃거리고 꺼진 텔레비전을 골똘히 들여다보다 열린 방문을 지나 산산히 흩어지는 그림자.
너는 자주 행복했어. 알아야 할 것이 많이 남은 세상을 담담히 받아들였다. 알아갈수록 슬픈 일 뿐이란 걸 미처 모른 채, 지금은 내 발치에 차갑게 누워서.

아니야, 조금 있으면 일어날 거야. 이렇게 끝은 아니야.

“야, 권지용!”

다급한 발소리와 함께 남아 있던 미닫이문이 쾅 떠밀려갔다.

“무슨 소리야?”

갑자기 밝아졌다. 좋아하던 최승현이 왔는데도 아이는 움직이지 않았다. 눈이 열려 있었다. 내게는 보이지 않는 아주 먼 데를 보느라 초점은 사라졌다. 귓가에 고여 있던 마지막 핏방울이 떨어졌다. 나는 손끝으로 피를 훔쳤다. 이미 끈적해진 피가 검붉은 색으로 엉겨들었다.

“...이게 뭐야.”

최승현이 드디어 한 걸음을 뗐다. 비틀거린다. 조금 전 우리는 최승현의 집 앞에 서 있었다. 안녕, 내일 봐, 밤 동안 헤어지기 싫은 최승현과 아이가 서운한 인사를 하고 우린 전부 웃으면서 돌아섰는데.
일상은 시계가 움직이듯 규칙적이었다. 나는 그 지루함이 고마웠다. 어떤 사건이 생긴다면 그건 늘 좋지 못한 일이라는 걸 경험으로 충분히 알고 있었다.  

결국 이렇게 깨져 버리나. 믿을 수 없었다. 최승현과 나는 둘 다 이해를 못 했다. 아이의 시체를 사이에 둔 채 마주보고 눈앞의 사건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승현아...”
“씨발, 이게 뭐냐고!”
“해피가 숨을 안 쉬어...”
“어떻게 된 거야, 어?!”
“해피가 이상해...”
“...”
“아버지가 왔어. 도망가다가...마루에서 떨어졌는데...”
“무슨 개소리야.”

최승현이 아이를 나꿔챈다. 아이의 몸이 거칠게 끌려갔다. 아이를 채근하다 순식간에 희게 질렸다. 죽은 아이는 살아 움직이던 몇 시간 전과 완전히 달랐다. 어깨를 붙들자 남은 몸이 제멋대로 늘어졌다. 아이를 천천히 쓰다듬어 본다. 그래도 아이는 그저 눈을 뜨고 있었다. 눈이 감기지 않았다.

“해피야. 정신 차려봐. 해피야, 응? 해피야, 너 진짜...제발.”

쿵 소리가 나도록 바닥에 떨어뜨려도 그대로인 조그만 시체. 최승현이 그것을 마구 흔들었다. 팔다리가 흉하게 덜컥거렸다. 상처가 난 목은 뒤로 꺾인 채 그대로였다.  

오래 전 길에서 죽은 개를 떠올렸다. 차에 치여 몸이 뒤틀린 개는 헐떡이며 숨이 끊기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터진 내장이 끔찍해서 도망쳤다. 며칠 후 묻어 주고 싶어 찾아갔을 때 남아있는 건 얼룩이 되어버린 핏자국 뿐. 개는 그렇게 죽어갔다. 마루 아래 누운 해피의 마지막 몇 초도 그랬을까.

해피는 눈을 감지 않는다. 두 눈을 부릅뜬 채 아프고 괴로워서 그냥 죽어 버렸다. 최후의 비명을 질렀을 때 나는 해피가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했었다. 그러나 문을 여는 소리가 아니었다. 그건 삶이 아닌 죽음으로 가는 신호였다.

“승현아.”
“...”
“어떡해.”
“...”
“해피가 죽었나봐.”
“...말도 안 돼.”
“진짜 죽었나봐..”

나는 해피를 안았다. 가벼웠다. 이렇게 작았구나. 볼품없는 내 팔으로 전부 가두어질 만큼.
무언가를 움켜쥐려 했던 손이 그대로였다. 그러나 손을 뻗은 허공에는 붙들 것도 붙잡아 줄 것도 없었다. 내가 잘라 주었던 머리카락을 쓸어넘겼다. 찬 이마를 어루만졌다. 어떤 경악 속에 숨이 끊긴 아이는 죽어서도 평화롭지 못할 것 같았다.

“잘못했어..”
“이게 뭐야. 왜...”

최승현이 무릎을 꿇었다. 이제 흙빛으로 변해서 실소한다. 이게 뭐야, 꿈이어도 납득이 가지 않는 일.
차차 현실임을 알았다. 처음으로 안은 아이는 품 안에서 무겁게 겉돌았다. 두 팔에 아무리 힘을 주어도 살은 기척이 없다. 현실은 이게 전부라는 걸 온 몸으로 느꼈다. 무섭도록 차고 단단했다. 경직이 시작되고 있었다.  

“내가 잘못했어, 해피야..”

잘 해 준 적이 없다. 네 발목에 끈을 묶어 놓았었어. 너는 바보여서 끈이 풀려도 꼭 그만큼의 반경을 벗어날 줄 모르고. 화가 나서 소리를 질렀지. 아이는 완벽하게 연기했다. 울음은 참고 눈을 휘둥그렇게 뜬 채 그 정도 박대는 충분히 참는 척.
내가 접시를 집어 던졌어. 아버지가 하던 행동과 똑같았다. 벽에 부딪힌 접시가 끔찍한 소리를 내며 산산조각났다. 아이는 울지 않았다. 내가 버리려고 했어. 넌 나를 제일 미워할 거야. 낳아 버린 엄마보다도, 방 안으로 쳐들어 온 아버지보다도.

“한 번만, 한 마디만 해봐..”

듣고 싶은 말이 있어.

“딱 한 마디만..”

듣고 싶은 말이 많아...
뻣뻣해진 볼에 내 얼굴을 부볐다. 이제서야 할 수 있게 되었다. 미루어 놓았던 다정한 말과 손길. 어차피 똑같을지도 모르겠다. 새로운 집을 찾아 살아서 떠난대도 보이지 않는 데 숨어 우는 것이 고작이었을 테니까. 애정은 드러낼 수 없는 것이었다. 그건 네게 해로울 줄 알았어. 나쁜 건 줄 알았어.

“놀이공원 가야지...”

네 생일이야, 속삭여주었다. 재미있게 해 줄게. 잊어버리면 안 돼. 잊지 마. 나중에 날 찾아내. 내가 도망가도 꼭 따라와. 보고 싶었다고 해. 내가 막 싫다고 할 수도 있는데, 사실은 안 그런 거야. 사실은...

아이가 눈물을 흘렸다. 볼이 젖어들었다. 그러나 다음 순간 깨달았다. 눈물은 나만의 것이었다.
느린 울음이 목구멍을 타고 올라왔다. 눈물이 지나는 자리마다 뜨겁고 쓰라렸다.  

“이러면 안 되는데.”
“...”
“이게 아닌데..”

결국 빼앗긴 아이의 얼굴이 눈물로 온통 바래어졌다.
최승현이 내게서 고개를 돌렸다. 나는 울었다. 아이가 소중했다.





















-
마당으로 나간 최승현이 전화를 거는 것이 보였다. 나는 해피에게 귀를 기울였다. 아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완벽한 정적이 나를 일깨웠다. 아이는 인형이 아니었다. 말을 못 하는 것은 아주 단순한 문제였다. 늘 작은 소란에 휩싸여 있었다. 숨소리, 종종 수다스런 눈빛, 살아있는 것에만 허락되는 말 없는 소통이 끝나 버리고 아이는 침묵했다. 착한 아이가 너무 냉정하게 굴어서 나는 눈물이 났다.

잠시 후 최동욱이 도착했다. 가장 먼저 아이를 확인했다. 품 안의 아이를 잠깐만 보여 주고 다시 숨겼다. 다른 사람들은 지금 아이가 별로 예쁘지 않다고 생각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굳은 몸을 다루기 힘들어서 억지로 목을 돌려야 했다. 아이가 내 옷자락에 코를 박았다. 최동욱은 한숨을 쉬었다. 세상에.

“별 일이 다 일어난다.”
“...”
“괜찮니?”
“...”

허리를 숙인 최동욱이 눈높이를 맞춰 왔지만 피했다. 나와 해피를 뺀 사람들이 전부 무서웠다. 도와달라고 하고 싶은데 마당에 선 최승현은 등을 돌리고 있다. 주먹을 쥐고 있었다. 곤두선 목덜미가 꼭 해피처럼 딱딱했다. 아무 움직임이 없어서 덜컥 겁이 났다. 승현아, 불렀지만 벌려진 입에서 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승현이랑 얘기할게.”
“...”
“정신 차리고.”

최동욱이 얼핏 나를 뒤돌아본 것 같다. 못박힌 최승현을 뒤척여 걷게 만든다. 마당 구석에서 들리는 이야기 소리. 최승현의 목소리만 알아들었다. 기계적인 대답이 계속되었다.

어느 것이 꿈일까. 나는 악몽을 자주 꾸었다. 꿈의 내용은 대부분 비슷했다. 내가 아는 모든 사람들이 탄 기차는 나를 두고 출발한다. 모두가 즐겁다. 내가 미처 기차를 타지 못했다는 걸 아무도 모른다. 나는 플랫폼을 달린다. 그래도 기차는 나를 두고 떠날 거라고 알면서도 계속 달렸다. 플랫폼의 끝에서 나는 울었는데, 잠에서 깨어나 꿈이 사라지고도 눈물만은 계속 흘렀어.

아이가 눈을 흡떴다고 생각했지만 그것도 내 착각이다. 죽은 눈이 불투명하게 변해가고 있다. 뿌연 막이 뒤덮여 걷히지 않았다. 내 눈물로 적신 아이의 얼굴을 닦아냈다. 그러나 목 뒤의 보라색 얼룩만은 아무리 해도 닦아낼 수 없었다. 아무리 문질러도 드리워진 얼룩은 그대로였다.

“그만 해.”
“...뭐지.”
“그만 하라니까!”
“안 없어져.”

최동욱은 갔다. 최승현이 내게 돌아왔다. 나를 방 한 구석으로 밀어 넣었다. 이불을 가져와 내게 안긴 아이를 가려 버린다. 내던지려는 나와 덮어 두려는 최승현 사이에 실랑이가 생겼다. 나는 아이에게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이불 자락으로 목덜미를 다시 문지르는데 보라색 얼룩은 계속 커지기만 한다. 승현아, 이거 이상해, 진짜 이상해.

“왜 이런 거야.”
“...”

내 옆에 털썩 주저앉은 최승현은 빈 손에 얼굴을 묻을 뿐이었다. 너도 왜 나한테 냉정해.
제 어깨에 나를 기대게 한다. 순순히 기댄 내 머리 위로 메마른 목소리가 쏟아졌다. 그만 봐, 제발.
최승현의 무릎 위로 아이를 올려 주었다. 살며시 기척을 살피는데 최승현은 아이를 거들떠보지 않았다. 그 대신 나만 바라본다. 아마도 슬픔에 가까울 표정이 아이만큼 이상했다.  





















-
잠이 들었던 걸까, 아니면 시간이 제멋대로 고장난 걸까?
나는 계단을 내려가고 있다. 좁고 허름한 그 계단을 평범한 어느 날처럼 딛는 중이다. 내 상상인 줄 알았는데 정말이었다. 최승현이 내 팔을 붙들었다.

“발 조심해.”
“...”

중심을 잃을 뻔 했다. 아이를 안고 있어서 넘어지면 일어설 수 없다. 나는 망설이며 다음 계단에 내려섰다.
아이는 최승현의 겉옷 아래 은폐되어 있었다. 아이를 껴안은 내 팔을 풀어내려다 포기한 최승현은 겉옷을 벗어 짐짝을 가리듯이 했다. 그럼 그것도 진짜였구나. 대문 앞에서 소리죽여 나를 재촉하던 것. 빨리 나오라고, 해가 뜨기 전에 가야 한다고.

새벽이다. 푸른 냉기가 비탈길을 쏜살같이 흘러 내려갔다. 해는 곧 뜰 텐데 사람의 기척은 어디에도 없다. 지붕이 낮은 판자촌 집들은 납작 엎드린 채 꼼짝도 하지 않았다. 늦은 밤 혼자 돌아오는 길은 정적이 서글펐다. 그러나 지금은 무덤덤했다. 어차피 이 길에 등장할 어느 누구도 나를 도와줄 사람은 없으므로.

가로등이 하나씩 꺼지기 시작했다. 가로등은 언제나 가장 높은 곳에서부터 죽어가기 시작한다. 계단을 다 내려가자 희뿌연 새벽빛이 아직 남은 조명 아래 일렁였다. 최동욱과 영배형이 기다리고 있었다.

“지용아.”
“..형 왔네.”
“할 말이 없다.”

최승현이 끄는 대로 자동차에 탔다. 차는 텅 빈 도로를 숨죽인 채 달렸다. 점점 더 복잡하고 넓은 길이 시작되어도 전염병이 휩쓴 듯한 고요만이 계속되었다. 해가 곧 뜰 텐데. 어제가 그랬고 내일이 그러하듯이.
최동욱이 말했다. 출생신고도 안 되어 있고..머리아픈 것보다..처리해놨으니까..낮고 빠른 목소리를 절반도 이해하지 못했다. 영배형과 최승현이 주고받는 이야기 역시 들리지 않았다.
어디론가 오래 달렸다. 나는 창 밖을 응시했다. 완전히 밝아 버린 오늘. 지겹도록 똑같은 풍경이었다. 그 속에 큰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는 걸 나는 사실 알고 있었는데.

어느새 포장되지 않은 흙바닥의 진동과 마찰이 느껴졌다. 야산을 감돌아 꺾인 길은 거칠었다. 멈춘 곳은 흙먼지가 날리는 공터였다. 우중충한 회색 건물 앞으로 잎새가 없는 나무들이 줄지어 섰다. 싸늘한 건물을 멍하게 쳐다보는데 최동욱이 내게서 아이를 빼앗아갔다.

“뭐예요?”
“말했잖아. 안 듣고 있었구나.”
“...”
“화장할 거야.”

하마터면 화를 낼 뻔 했다. 그러나 최승현이 내 손을 잡아 왔다. 혼란 속에서 불현듯 예전 기억이 떠올랐다. 최승현이 아이를 구해 주었던 날. 열에 들떠있던 아이가 최승현의 옷깃을 꼭 쥐고 있었다.  

트렁크에 있는 상자를 꺼냈다. 영배형과 최동욱이 그 속에 아이를 넣는다. 돌아선 최승현이 나를 안아주었다. 조금씩 쓰다듬으며 달랬다. 보지 마. 괜찮아. 그날과 똑같았다. 아이만이 죽어서 달라지고 우리 전부 그대로였다.  

“잠깐만 보면 안 돼..?”
“그냥 있어.”
“한 번만. 마지막으로 볼게.”
“하지 마, 지용아.”

최승현이 놓아 주지 않았다. 빠져 나가려고 밀어냈지만 닫힌 팔은 아까 전 나보다도 견고했다. 반쯤은 할 수 없이 최승현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은 채 어깨 너머로 보았다. 상자가 닫히려는 순간 아이의 얼굴은 변색되고 짓물러져 감기지 않은 눈에서 안구가 부풀어 있었다.
















-
천장이 높은 화장장은 도둑맞은 공장처럼 허전했다. 겉보다 안이 더 건조하고 푸석했다. 부스스한 페인트칠이 말라서 벗겨졌다. 저 편의 소각로가 유리벽으로 구분되었고 보이는 것 전부 칙칙하게 바랬다. 문턱을 내미는 걸음이 지독하게 들러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바깥에서 본 화장장 뒤편에는 길다란 굴뚝이 자라나 있었다. 해피를 태운 연기는 그 곳으로 빠져나가 사라지고 말겠지.
손 끝이 저렸다. 소름끼치게 찬 마비가 팔과 목으로 번져갔다. 최승현이 부축해 주지 않았더라면 고꾸라졌을 것이었다.
최승현은 묵묵부답이다. 화장장 안에서 아무리 매달려도 답이 없었다. 지금껏 응석을 부리거나 조른 적도 없는데, 정말 처음인데 야속했다. 너무 화가 나서 마구 때렸지만 최승현은 선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하지 말자. 어? 승현아, 나 하기 싫어.”
“...”
“태우지 마.”
“...안 되는 거 알잖아.”
“그럼 조금만 있다가 묻어 주자. 며칠만, 응? 이거 마음에 안 들어. 하기 싫어.”
“지용아, 왜 이래.”
“너야말로 왜 이래!”

안 죽었을지도 모른다고 고집을 피웠다. 최승현도, 한발짝 떨어진 영배형과 최동욱도 나를 쳐다보지 않는다. 나는 힘이 빠졌다. 나도 그만큼은 알고 있었다. 침착하고 싶었다. 그러나 마음먹은 대로는 조금도 되지 않았다.
나를 덥석 붙든 최승현이 발길질과 주먹질을 그냥 다 맞았다. 입술을 깨문 최승현을 보고 이제는 더 이상 어리광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소용이 없었다.

“해피야..”

화장장 안에는 다른 사람들이 없었다. 나는 홀로 유리벽에 이마를 기대었다. 해피를 넣은 나무상자가 소각로에 던져졌다. 불길을 내보였던 소각로는 금방 닫혔다. 단순한 과정이 기묘한 무음상태 속에서 진행되었다. 모든 것이 다 보이도록 투명한데 유리벽 너머로 세상은 공공연히 나뉘어졌다.

눈물은 몸 안이 아닌 어느 먼 곳에서 흘러왔다. 눈꺼풀을 비집고 나와 추락한 눈물은 바닥에 부딪혀 쉴새없이 깨졌다. 분명 행복했던 순간이 있었는데. 시간도 삶도 돌이킬 수 없고 아이는 스산한 뒷모습을 드러낸다. 해피는 죽었어. 이제 없어. 다시는 안 와.

“말이 안 되잖아..”

울면서 나는 기도했다. 가난한 기도는 아이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 왜요. 왜 데려갔어요. 왜 시작도 끝도 빼앗았어요. 마음먹은 대로 되는 일은 아무것도 없고 마루 아래에서 개처럼 죽도록. 아무 잘못도 안 했어요. 가져본 것이 없는데. 욕심을 낸 적도 없는데. 좁은 마당을 벗어날 수 없었던 그 어린 아이를 왜.
내가 접어 주었던 종이배. 그것이 아이에게 주었던 유일한 선물이었어. 귀퉁이가 맞지 않은 종이배를 아이는 허물어질 때까지 아꼈다. 부탁이예요. 하루만 돌려 주세요. 딱 하루만 같이 있게 해 줘. 아직 생일 선물을 못 줬어. 아직 할 말이 있어. 제발 하루만.

단단한 유리벽이 온통 젖어 흥건해졌다. 내 눈에서 흐른 눈물이 매끄러운 표면 위로 얼룩졌다. 나는 몸부림쳤다. 내 팔과 어깨가 벽에 충돌하고 반향 없는 울림만 퍼져 나가길 몇 번.
흐느낌이 온 몸을 뒤흔들었다. 마지막 하루는 허락되지 않는다. 해피는 소각로 안에서 불타고 있었다. 일찍 결말이 난 동화. 아름답지 못한 부분을 수없이 남기고 이젠 정말 끝이었다. 

그래.

“차라리 잘 됐어...”
“...”

눈물을 닦았다. 내 옆으로 다가온 최승현은 침묵할 뿐이었다. 악물은 입술에 피가 맺혀 있었다. 











     

Posted by nico